본문 바로가기

자립심을 키워주는 자전거 여행 처방

Trouble: 어른으로서 당당히 혼자 서고 싶어요!

올해 딱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지만, 사실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학교에 가서 수업 듣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안락한 삶을 영위 중입니다. 스무 살이 반쯤 지나니 내가 과연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성취를 통해 혼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음을 느껴보고 싶어요. 자식으로서 부모님께도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면 절 자랑스러워 하고 좀 더 어른으로 대해주지 않으실까요?


Answer: 모든 것을 혼자 다 보세요.

집도, 밥도, 학교도 당장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많은 준비를 통해 ‘독립’을 했을 때 가능한 일이겠죠. 꼭 극단적으로 도움을 뿌리치고 안락한 생활을 벗어나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에요. 무언가 혼자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당신은 당당한 성인이 맞습니다.

홀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에 부딪쳐 보는 데에는 여행만한 스승이 없죠. 오죽하면 대학생들이 방학만 되면 배낭을 메고 떠나겠어요. 요즘 세상에 무전여행은 위험하고, 아직은 학기 중이니 워밍업으로 가볍게 주말 자전거 여행을 홀로 떠나보세요. 길 위를 혼자서 달려 목적지에 다다르는 여정 동안 마음이 한 뼘은 더 자라 있을걸요. 직접 찍은 풍경 사진과 여행담을 전해 드리면 부모님도 우리 자식이 이제 혼자 세상을 누비는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하실 거예요.

혼자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안성의 두리마을 자전거길을 추천해 드릴게요. 여행 끝에 멋진 어른이 되어 돌아올 모습을 응원합니다!


두리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경기도 안성시 두리마을

소박한 시골풍경이 펼쳐지는 경기도 안성시 두리마을은 보개면의 양협, 금광면의 복거마을과 신기마을 등 7개의 부락이 모여서 만들어진 마을공동체 같은 곳입니다. 봄에 피는 양귀비가 아름다운 플로랜드, 호랑이마을이라는 애칭을 가진 복거마을, 조령천변의 이색적인 예술공원 같은 명소들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 7.5킬로미터의 자전거 길로 마을들이 서로 이어지게 되면서 현재의 두리마을이 되었답니다.

골목길과 농로길을 이용하여 7개의 마을을 하나로 엮은 두리마을 자전거 길은 마을주민들과 소통하고 정겨운 농촌풍경을 감상하게 되는 마을여행길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자전거여행이 시원한 강변, 해안도로를 달리거나 숲 속 오솔길을 오르내리는 스피드와 스릴이 있는 라이딩이었다면 두리마을 자전거여행은 느린 페달링으로 시골마을의 정겨운 담벼락과 곡식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풍경들을 마주하게 되는 여유 가득한 가을 힐링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경사가 적은 길이기 때문에 누구나 편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길이랍니다.

두리마을 자전거길은 안성시 종합운동장에서 시작하여 플로랜드, 옹기체험장, 복거마을, 자연예술공원을 거쳐서 조령천 체육공원에서 마무리하게 되는 약 7.5km, 1시간 30분 코스입니다.


작은 언덕에 서서 황금 들녁을 바라보며 가을을 이야기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축제인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가 열리는 안성 맞춤랜드에서 남쪽으로 약 4킬로미터 거리를 내려오면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한 플로랜드를 만나게 됩니다. 플라워(Flower)와 랜드(Land)의 합성어이기도 한 플로랜드(Floland)는 한경대학교 부속농장으로 서울 올림픽공원의 들꽃마루처럼 봄이면 양귀비가 언덕을 붉게 물들이고,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가 노란 물결을 이루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꽃의 언덕이기도 합니다.

플로랜드 전망대로 가는 길은 은행나무 가로수가 멋있게 서 있던 길. 가을이 찾아왔지만 은행잎이 채 물들기도 전에 계절의 향기를 가득 안고서 낮은 곳으로 임한 열매들에게서, 영원히 꽃과 잎사귀가 만날 수 없는 상사화를 떠올려 보기도 했던 것은, 지금이 모두가 감성적일 수 밖에 없는 가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건물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니 금방 전망대 정상입니다. 따가운 햇볕을 품은 황금빛 정열이 시선 속으로 밀려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가을들녘 풍경에 한 없이 빠져 듭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을이 만들어 낸 흔적들. 반갑게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었는데 가을이라는 계절은 어느 새 우리들 곁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플로랜드 언덕에서 내려와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던 그 길은 소박하고 정겨운 벽화들이 있는 이야기길이기도 합니다. 골목 사이 사이에서 진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고 이중섭 화백의 작품들을 담벼락에서 만날 수 있던 곳. 쓸쓸하고 낡았지만 아련한 기억 속의 익숙한 골목풍경들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며 이 곳에서의 평범한 일상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앞만 바라보고 가야 하는데 자꾸만 길 주변으로 시선이 가다 보니 가끔씩 자전거가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기분 좋은 마을길입니다. 혜민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의미처럼 자전거 여행은 느리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고, 머물고 싶은 곳에선 머물면 되는 자전거여행은 길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호랑이를 기다리는 복거마을에서 만난 호랑이들

추수걷이를 준비하는 시골길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호랑이마을로 알려진 복거마을입니다. 금광면 신양복리에 위치한 복거마을은 마을 뒷산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복호리(伏虎理)라고 불렸던 마을로 몇 년전 행정안전부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공공사업의 일환인 ‘아름다운 미술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의해 마을 곳곳에 호랑이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이 설치되고 벽화가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인 호랑이는 한국의 민화 속에서 늘 익살과 해학이 가득한 동물로 묘사되었던 동물입니다. 신성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호랑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보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표현수단으로도 이용되었을 호랑이입니다. 복거마을의 호랑이들도 민화 속 호랑이들과 닮아 있었답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호랑이 조형물엔 ‘호랑이를 기다리며’ 라는 작품명이 붙어 있지만, 오히려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 지금의 농촌들이 처한 현실이 조금 엿보이기도 합니다.

복거마을의 호랑이들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따라 달립니다. 지나온 길이 아쉬워 다시 뒤돌아보게도 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서 가을의 따스함을 더듬어 보기도 합니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길, 느리게 느리게 달려도 좋은 길이 조령천으로 이어집니다.


파란 양들이 있는 예술공원에서의 가벼운 휴식

겨울철 빙어 낚시터로 유명한 금광호수에서 흘려 내린 물이 조령천으로 이어지고, 세월교 옆 작은 예술공원을 구불구불 자전거길이 가로 지릅니다. 랜드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시유지를 예술공원으로 변모시킨 조령천 자연예술공원은 두리마을 인포센터가 있는 곳으로 먼 길을 오느라 지친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가을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하는 풀밭에서 놀고 있는 듯한 코발트 블루의 양들이 이색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것이 길이라지만 길가에서 만나는 인연은 더 새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온기는 느껴지지 않고 주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다소 생뚱맞은 모습의 양들이지만 친근감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내려앉은 풍경 속으로 달려가다

그 동안 소박한 마을 골목길들을 누비고 다녔다면 예술공원에 위치한 금광2교에서 백성교까지 이어지는 약 4킬로미터 자전거 길은 시원스럽게 내달릴 수 있는 아우토반 같은 길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풍경을 품은 길. 넉넉하고 풍요로움이 넘치던 그 길은 여행자의 기억 속에 살며시 스며들 정도의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했던 길이었습니다.


지나온 길 한눈에 보기

  • 플로랜드: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양협길 29-67
  • 복거마을: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신양복리 복거마을회관
  • 조령천 자연예술공원: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금광리
  • 문의: 안성시 관광안내소 031- 678-2059 / 경기도 종합 관광안내소 031-1330

연계해서 가 볼만한 주변 가을여행지
  • 아침 물안개가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고삼호수
  • 백만송이 금송국화가 만개한 칠장사
  • 베토벤 바이러스의 촬영지인 구포동성당
  • 향긋한 향기가 머무는 안성허브마을


황혜성 / 여행 칼럼니스트
  • 2010~2014 네이버 5년 연속 여행 파워블로거
  • 2011~2013 일본 여행잡지 수카라(スッカラ) 여행작가로 활동
  • 경기관광공사 '내 안의 경기관광의 별' 수상
  • 월간 사진, 베스트베이비 등 각종 월간지 및 지자체 소식지, 대기업 블로그에 여행기사 기고
  •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산림과 숲, 팜 스테이, 국립생물자원관 등 다수의 사진공모전 수상
  • [트래블로거 전북을 탐하다], [서울, 뚜벅뚜벅 산책], [한옥에서의 하루]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