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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륙 50주년, 인류의 달 탐사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달착륙 50주년,
인류의 달 탐사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1969년 7월 21일. 모두가 기억하는 닐 암스트롱이 세계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내디딘 날이다. 그리고 2019년은 달탐사 50주년이 되는 해다. 달탐사는 인류의 위대한 도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한 아버지의 도전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다. 글. 채연석 박사(전 항공우주연구원장)




암스트롱은 왜 달을 향해 떠났을까?

영화 <퍼스트맨>을 보면 닐 암스트롱의 도전은 절망속에서 시작되었다. 마하 6이라는 극초음속을 돌파하는 비행체 X-15 운행에 연이어 실패해 근신처분을 받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살배기 딸은 끝내 종양을 치료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다.
상실감으로 가득 찬 그 때 암스트롱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아폴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전 단계인 ‘제미니 프로젝트’의 우주비행사 모집 공고였다. 여기에 참여한 암스트롱은 이론수업부터 우주상황을 대비한 훈련까지 필요한 기술을 습득해 나간다. 제미니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수행한 암스트롱은 아폴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아폴로 우주선 선장으로 탑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속이 타는 것은 다름 아닌 암스트롱의 아내였다. 훈련과 테스트에서 암스트롱 동료들의 죽음과 남겨진 가족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곧 자신의 일이 될수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던 암스트롱은 가족들에게 “최선은 다하지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달탐사를 위해 우주로 떠난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여정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우주선에 올랐기에 그의 도전기가 더욱 빛이 난다.


2018년 개봉 / 감독 데이미언 셔젤 / 주연 라이언 고슬링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

암스트롱이 우주비행사가 된 이때 미국과 소련 간 우주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이 전쟁에서 소련이 첫 승기를 잡는다. 1957년 10월 4일에 첫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고, 이어 1961년 4월에는 첫 우주인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1호를 발사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첨단과학기술 강국이라고 자부했던 미국으로써는 땅덩이만 큰 농업국가로 치부했던 소련으로부터 대 망신을 당한 셈이다. 젊고 도전적인 케네디 대통령은 우주개발분야에서 미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도전을 시작하였다. 1961년 5월 25일 케네디는 미국 의회의 양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폴로 계획을 선포한다. 그리고 1962년 9월 12일 라이스대학을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명연설을 남겼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역량과 기술을 한데 모아 가늠해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도전이야 말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이고, 우리의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아폴로 11호를 태운 새턴-V 로켓을 발사하다

1969년 7월 16일. 사령선, 기계선, 달착륙선으로 이루어진 아폴로 11호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거대한 새턴-V 로켓에 의해 발사됐다. 영화 속의 장면이지만 발사할 때의 엄청난 굉음과 강한 흔들림, 눈을 질끈 감은 암스트롱의 모습은 로켓의 속도와 느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엄청난 불꽃을 발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로켓이 비춰질 때 인류의 달탐사는 무모함과 위대한 도전 사이에서 출발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달로 향했다 하더라도 미지의 여정에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다. 영화를 보면 사령선에 남아 있게 되는 동료 마이크가 달착륙선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암스트롱에게 "먹을 것 좀 가져가겠나?" "껌은? 몇 개 줄까?"라며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건다. 너무나 불안하면 말이 많아진다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떠나가는 동료가 걱정되는 것이다. 이때 암스트롱은 마이크의 어깨를 토닥이고, "꼭 돌아와"라는 마이크의 말을 뒤로한 채 달착륙선의 문이 닫힌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성공적으로 착륙하기까지 위험한 고비도 많았다. 특히 달착륙선이 달에 착륙할 때는 이미 연료가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다. 몇 초만 늦었어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돌발적인 위험 상황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주였다. 후일담이지만 달에 착륙할 때 너무 긴장해 우주복에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바다. 독수리는 착륙했다.”

아폴로 11호는 발사 12분 후 186km의 지구궤도에 진입해 지구를 한 바퀴 반 회전하고, 그 뒤 새턴-V의 마지막 로켓을 점화해 달로 가는 궤도로 진입했다. 30분 후에는 새턴-V 3단계 로켓을 최종 분리해 떨어뜨리고 따로 보관돼 있던 달착륙선과 합체했다. 아폴로 11호는 발사 3일만에 달의 뒤편에 도달한 후 기계선으로 로켓 엔진을 점화해 달 궤도에 진입했다. 궤도에서 달을 13바퀴 돈 후에야 착륙지점인 고요의 바다 20km 상공에 도달하고 달착륙선으로 갈아탔다.



달 착륙 후 6시간 반 만에 암스트롱은 착륙선에서 내려 달에 역사적인 인류의 첫 발자국을 찍었다. 암스트롱과 그의 동료 올드린은 약 2시간 반 동안 달의 표면에 성조기를 세우고 사진촬영을 했다. 지진계와 레이저 반사경 등 여러 과학장비를 설치하고 22kg의 달 암석과 토양 샘플도 채집했다.
달에서 모든 활동을 마친 뒤 착륙선 상부의 이륙용 달착륙선을 이용하여 달에서 이륙하여 달궤도로 회전하고 있던 사령선과 도킹한다. 사령선으로 2명의 우주인이 옮겨탄 후 기계선의 로켓엔진을 이용하여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구를 떠난 지 일주일 만에 낙하산을 펼치고 사령선만 지구에 귀환했다.


사진출처 : NASA 홈페이지
사진출처 : NASA 홈페이지
사진출처 : NASA 홈페이지
사진출처 : NASA 홈페이지



지구인의 달착륙, 첨단기술 시대의 문을 열다

아폴로 우주선과 새턴-V는 700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있다. 달탐사에 동원된 관련 산업체는 1500여 개, 그리고 참여인원은 30만 명이었다. 컴퓨터, 전자통신, 기계, 항공우주, IT분야 등 미국의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폴로 11호의 안정적인 달착륙을 위해 전 세계에 14개의 추적소를 건설하였고, 바다에는 5척의 추적선을, 그리고 하늘에는 8대의 추적비행기가 떠있었다. 또한 40만 명이 지상에서 준비를 했다. 전 세계에 중계를 하기 위해서 새로운 통신 방송위성도 발사되었다.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디디며 한 명언,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말대로 미국의 달 탐사 도전 이후 지난 50년 동안 세상이 달라졌다. 인터넷, 네비게이션, 스마트폰, 8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대형여객기의 탄생, 무인자동차 등 인류에게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전 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자의 꿈을 심어주었다. 우주개발은 부가가치가 높은 수많은 첨단기술을 탄생시키고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선진국들이 우주개발에 열심히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의 스페이스-X사는 달나라에 관광선을 보내고 외국의 우주선을 달에 보내주는 상업서비스를 시작했다. 2021년이면 우리도 독자적인 우주발사체를 갖게 되고 이를 이용해서 달에 탐사선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동안 달탐사를 통해 달에도 지구와 같이 많은 자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래에는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많은 에너지자원을 채굴하는 비즈니스도 활성화 될 것이다.